'숨 시리즈'는 어느날 TV에서 본 아프리카 초원의 물웅덩이에서 시작된다.
코끼리, 코뿔소, 기린 등 많은 동물들이 해가 지면 물을 마시기 위해 물웅덩이로 모인다. 나는 여러 동물들이 한데 모여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 모습에서 내가 바라는 쉼터를 느꼈다. 나는 이 물웅덩이가 윌리엄블레이크가 이야기하는 순수의 세계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상향을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라는 두 세계로 표현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순수한 자연과, 타락한 인간의 문명세계의 모습의 대립으로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가 말하는 순수의 세계는 인간의 문명화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환경 속에서 모든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이다. 하지만 이 순수한 세계는 결국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만나 경험의 세계로 변화한다. 그러면서 점차 억압되고 진실하지 못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나는 나에게 순수한 세계였던 물웅덩이를, 원형 캔버스에 가루안료를 손으로 문지르며 그려나갔다. 어디에서 봐도 모난 곳 없이 동그란 평면에, 물감으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 가루안료를 손으로 문지르며 작업을 했는데('숨 시리즈',2020-2021), 옛 선조들이 달아래에 물을 떠다놓고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비는 행위에서 영감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순수한 세계를 그림에 담고자 소원을 빌며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보이지 않는', 2021).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순수함이 점차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바디페인팅을 통해 기록하고 싶었다('어느날', '별없는 밤',2021). 몸에 물감을 들이 부어, 9M 길이의 캔버스 천에다 비비고 찍어내는 행위를 반복했다('Border line', 2021). 작업을 할수록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이것은 나의 몸짓에 영향을 주었다. 손으로 가루를 비비던 행위는 점차 온몸으로 춤을 추며 캔버스를 할퀴는 듯한 움직임으로 변화했다.그 움직임들의 흔적들은 실제하지않는 환상의 세계를 열망하고 찾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남긴다.
글. 최희준 (2020)
© Hee Joon Choi